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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판타지아

수민 2022. 2. 2. 16:24

 

한여름의 판타지아 - 장건재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김새벽이란 배우의 매력, 일본의 분위기가 맞물려 흠뻑 빠졌던 영화.


 

1부(첫사랑 요시코)는 흑백으로, 영화에 대한 영감을 찾아 나라현 고조시를 취재하는 감독(태훈)과 조감독(미정)의 여행기다.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실제처럼 느껴질 정도로 연기가 자연스럽고 카메라의 구도도 다큐멘터리같다.

고조시에 사는 주민들을 인터뷰한 장면들은 진짜 인터뷰를 한 것 같았는데 나는 출연 배우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배우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여서 어떤 방식으로 촬영되었는지 궁금했다.

또 고조시 주민들의 일본어는 미정의 통역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어 감독의 시선에서 함께 고조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점이 새롭고 좋은 느낌을 받았다. 인물들에게 더 쉽게 몰입하게 된다.

젊은 사람들이 모두 떠난 나라현, 이곳에서 배우를 꿈꿨으나 공무원을 하며 살아가는 유스케가 그들의 눈에 들어오는데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갔던 도쿄에서 첫사랑을 만났던 일과 자신에 대해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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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2부 역할만 다른 동일한 배우들이 나오는데, 스스로도 좀 심각했다고 생각하지만 닮은 배우들인 줄 알았다.

흑백과 컬러 각각 인물의 느낌이 달랐고 그 캐릭터들이 크게 튀는 역할이 아님에도

각자의 캐릭터대로 잘 스며들었다는 점도 적지 않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1부는 실제 다큐멘터리처럼 어르신들의 인터뷰, 마을을 소개해주는 유스케, 한산한 카페와 마을의 전경 등이

보여지기 때문에 지루함이 느껴지긴 한다. 하지만 그 점이 1부를 더욱 진짜처럼 느껴지게 하고 2부의 판타지아를

더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지루하지만 탄탄하게 이 영화의 분위기와 호기심을 쌓아 올리는 단계.

 

일본의 한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던 팀이 대상 혜택인 제작 지원을 포기하면서 우연히 넘어온 기회로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하는데, 고조시를 배경으로 해야한다는 조건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 스태프와 작업)

장건재 감독은 실제로 취재를 위해 3박 4일 고조시를 다녀왔다고 하는데, 그것을 담아낸 게 1부의 이야기였다.

촬영은 총 11일 정도였는데 1부를 찍은 뒤 3-4일 여유가 났을 때 2부를 써야지라는 생각이었다고 하는데,

2부는 완성되지 못했고 그상태로 촬영을 시작하여 배우와 스태프의 의견들이 함께 들어간 작업물이라고 한다.

찍을 완성물이 없는 상태에서 찍는다는건 엄청난 도전이고 불안감이 많았을 것 같은데

일에서 만큼은 계획적으로 해야하는 내 입장에서는 좋은 작업물이 나왔다는 점이 신기하고

작업과정이 더 궁금해지는 비하인드 스토리였다.

 

2부(벚꽃 우물)는 1부의 감독(태훈)이 불꽃놀이를 본 다음으로 이어진다.

1부에서 조금은 무뚝뚝하고 명석하게 일본어를 통역했던 조감독 미정은

2부에서 고조시를 여행하는 해사한 웃음을 지닌, 일본어에 약간 서툴은 혜정이 되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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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에서부터 송새벽이란 배우의 매력을 느꼈다.

서툰 일본어지만 맑은 눈으로 안내데스크에 질문을 던지는 모습,

낯선 청년이 말을 걸어오자 약간은 경계하지만 곧 가벼운 질문들로 밝게 웃는 모습,

작은 행동이나 대사에서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말투와 목소리, 웃음까지도 매력적이다.

장난치는 걸 알아채고 보내는 눈빛, 적당한 온도의 대화, 둘이서 통하는 그 느낌을 나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한 리뷰에서 관객의 시선에서 이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고 있구나가 아니라

우리가 사랑에 빠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영화라는 평이 있었는데 동감한다.

 

장건재 감독은 송새벽 배우에게 처음 송새벽을 봤을 때의 그 느낌을 담아내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보통은 전작을 보고 배우를 캐스팅하는데, 이 말을 듣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2부의 대본도 나오지 않았고 일본에 가서 짧게 촬영해야하는 상황에서도 감독을 믿고 따라갈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처음 감독이 보았을 때 송새벽이란 배우에 대해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송새벽이라는 배우가 가진 얼굴, 목소리 톤, 웃음, 그 배우 자체의 매력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임은

후기들이 다 증명하고 있다. 이런 작품을 만났다는 것이 배우에겐 얼마나 행운일지.

필모그래피에 이런 영화가 남는다면 더할나위가 없겠다.

 

유스케는 혜정에게 말을 걸고, 길을 알려주며 함께 가준다.

유스케는 감 농장에서 감 만드는 일을 하고 있고, 결과가 바로 눈에 보인다는 점이 뿌듯하다며

자신의 일이 좋다고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혜정은 유스케의 질문에

무언가 자신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무언가를 찾으러 왔다는 이야기 정도만 하고 유스케처럼 털어놓지는 않는다.

유스케는 헤어질 때 아쉬워하며 안내해줄 사람이 필요하면 전화를 달라고 번호를 준다.

그래도 아쉬웠는지 자신이 만든 감도 여러 개 건네주는데 혜정은 처음엔 거절하지만 결국 하나만 받기로 한다.

이때 약간 곤란하지만 기분 좋고 설레기도 한 다양한 감정이 혜정의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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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일 땐 턱의 형태로 냉소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약간 어두워보이기도 하는 이미지인데

웃으면 차갑게 느껴졌던 여백이 채워지면서 송새벽이란 사람이 가진 밝은 기운이 느껴진다.

뭔가 담고 있는 듯한 눈빛과 조곤조곤한 말투, 생김새가 하나로 잘 어우러지는 매력적인 배우.

내가 감독이어도 너무 탐나는 배우.

 

혜정은 유스케의 가이드를 따라 나라현을 둘러본다.

이때 1부와 동일한 공간을 공유하는 모습이 보여지는데, 유스케는 액자를 보며 누군가를 찝어 아버지라고 이야기한다.

 1부에선 동일한 학교 공간에서 고조시를 안내해주던 인물이 첫사랑 요시코에 대해 이야기하고,

액자를 보며 누군가를 빤히 쳐다보는 사진 속 남자애가 자신 어렸을 때 모습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왔었다.

1부와 2부가 같은 세계관으로 연결되어있음을 알게 해주는 장면.

유스케와 혜정의 솔직한 고백.

처음 봤을 때 같이 있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유스케.

자신의 직업은 배우이고 남자친구가 있으며 곧 돌아가야한다는 말을 하는 혜정.

유스케는 남자친구가 있더라도 일본의 남자친구로 어떠냐고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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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근덕대는 모습으로 안 비춰지길 바랬다고 하는데 의도대로 담백한 고백으로 느껴졌다.

적당한 아쉬움과 적당한 애교와 적당한 표현.

혜정에게 이입을 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었던 것도 이와세 료 라는 배우가 받쳐주는 역할을

충실히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각자의 역할이 있어서 유스케는 혜정을 바라보는 옆 모습이 주로 보여지고

혜정은 얼굴이 잘 보이는 구도로 촬영된 듯하다.

 

혜정이 배우라는 사실을 고백할지 말지에 대해서 스태프의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감독은 송새벽 배우에게 혜정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은지 의견을 계속해서 물어보셨다고 한다.

배우가 상상력이 좋아야하고 유연해야한다는 점이 이처럼 감독 스타일에 따라 필요할 때가 있고

다양한 상황에 내던져지는 직업이기 때문인듯 하다.

 

아쉬움이 가득한 유스케.

사이가 좋지는 않지만 남자친구가 있고 각각 일본과 한국 다른 나라에 살며 너무나 다른 직업과

생활 패턴을 가졌기에 서로 이어질 수 없다는 현실을 잘 알고 있는 혜정.

둘은 분명히 잘 맞았고 서로 통했지만 헤어져야 하는 상황 속에서 유스케는 계속해서 혜정에게 여지를 남기고 싶어한다.

이 장면에선 유스케를 연기한 이와세 료의 섬세한 감정이 돋보였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애절하고 찐득한 사랑도 아니고

부담스럽게 치근덕대는 꼴불견의 남자도 아니고

감정의 순수함이 담겨 있는, 딱 그 온도의 아쉬운 눈빛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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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와 장면들 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 빠지게 하는 또하나의 큰 요소는 음악이었다.

푸릇푸릇한 골짜기 사이에 난 도로를 따라 깊이 들어가며 나오는 음악과 엔딩 음악이 나올 때 완전 빠져버렸다.

보다가 눈을 감아버렸다. 이 이야기가 좋아서 집중하고 싶었고 보지 않아도 느껴졌다.

엔딩 음악이 나오면서 그 여운이 이어질 때 좀 더 그 이야기 속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들어 끝까지 들었다.

 


 

1부와 2부로 나뉘어졌으면서 이어진 독특한 영화의 구성과 배우들의 자연스러움, 매력,

인물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카메라 구도, 음악 그 외에 

개인적으로 일본 여행에서 경험했던 일본의 마을, 거리, 불꽃놀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한층 더 좋게 느껴졌다.

일본은 두 번 다녀왔는데, 첫번째로 갔던 홋카이도에서는 기대하지도 않았던 불꽃놀이를 만났었고

두번째로 갔던 후쿠오카에선 시골의 조용하고 고즈넉한 거리가 인상깊게 남아서

그것과 닮아있는 이 영화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