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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한국적인 그림과 서정적인 시와
두 인물 간의 다름과 같음이 인상적인,
청춘.


 

교회학교가 인민학교로 바뀐다는 소식에 선교사로 보이는 남성1이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다.
신앙이 우릴 지켜주는 시대가 아니다, 의견이 오가던 마을 사람들 앞에 나서서 연설하는 몽규.
그래도 신앙 덕에 우리 마을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수용적인 태도의 동주와 달리,
몽규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상황에 맞서서 자기의 의견을 확실하게 이야기한다.
 
"온세계 인민이 계급도 차별도 없이 사는게 중요하지."
"기래. 그러믄 계속 견뎌라, 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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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의 연기가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동주와 대비되는 송몽규의 성격과 사상이 초반에 드러나는 부분인데 몽규는 자신만만하고 주체적이다.

자신감 넘치고 자연스러운 사투리, 과장하지 않고 멋부리지 않고 자기 자신에 취해있지 않고, 생각의 확신과 또렷함으로 자연스럽게 나오는 자신감, 그렇지만 어린 치기가 느껴지는 연설.

우리야 완성된, 만들어진 장면을 보지만 이 장면을 위해서 얼마나 연습하고 성격을 구축하는데 얼마나 노력했을까.

 

시를 쓰는 것을 반대하는 아버지, 마음에 상처가 될까 걱정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동주는 의기소침하다.
친적·가족들이 모두 동주의 꿈을 알고 있는데, 신춘문예에 당선된 몽규.
열등감까지 가질 성격이 아니나 동주는 마음 편히 기뻐해주지 못한다.
 
동주를 위로해주고 힘든 상황에서 구원해주는 것도 몽규,
절망에 빠뜨리고 여린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것도 몽규다.
 
"그거이 문예지에 맞지 않는 글 아니니?"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할거면 문학이 무슨 소용이 있니. 글쓰는게 뭐 권력이니?"
"야, 익화이. 너 시 한번 써보래이. 아 새끼리, 시 그거 아무나 쓰는거다이"
 
문학과 세상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견해 차이로 생기는 둘의 대립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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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화면 연출이 좋다.

한국영화를 볼 때 때때로 나는 영화가 촌스럽게 느껴지고 다 보기도 전에 기대감이 식을 때가 있다.

황을 있는 그대로 다 담고, 빠르게 전환하는, 고민이 보이지 않는 정형화된 익숙한 방식의 화면이 나올 때.

그렇지 않은 영화와 장면에 더 마음이 간다.

익환이가 산문을 소리내어 읽는데, 몽규가 화면에 걸린 채 포커싱된 익환이의 정면이 보여지다가 어깨 너머로 산문지가 포커싱되어 보여지고, 팔토시를 한 채 글을 다듬는 동주가 보여지는데 익환이의 목소리가 줄어든다. 동주가 한마디 한 뒤, 이번엔 몽규가 포커싱된 장면이 나오며 몽규가 한마디 하고, 이어서 말을 더 하는데 동주의 포커싱으로 전환되며 몽규의 어깨가 걸린 채 동주의 리액션이 보여진다.

 

"상황에 따라 이념이 바뀌니까, 이상이 오래가지 못하는거야!
주권없이 이상향을 노래해봐.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고민을 해봐야하지 않겠어?"
 
"...길이 있음 알켜주십소."
 
명의조 선생의 말투는 꼭 노랫말처럼 들린다. 아직도 귀에 그 음이 남아있다.
몽규에게 넌지시 독립운동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힌트를 던져주는데 몽규는 곧잘 알아듣고는 알려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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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에 따라 이념이 바뀌니까 이상이 오래가지 못한다. 주권 없이 이상향을 노래해야 무슨 의미가 있나.

개인으로서도 와닿는 말이라 뜨끔했다.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검의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흰 그림자를 읊는 동주의 나레이션과 함께 황혼 속 몽규의 모습이 흑백으로 나타난다.
황혼이라고 한다면 시각적으로 생각했을 때 얼마나 아름다운 때인가. 노년을 아름답게 보낸다는 표현으로 황혼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하는데, 컬러로 황혼이 담겼다면 이 시대의 아픔과 윤동주 시의 황혼에 담긴 의미가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시에 확 빠져들게 했던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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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중간 시를 읊는 동주의 나레이션과 장면들이 계속해서 나오는데 그때마다 의미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스스로 시를 쓴 듯 읊는 강하늘의 연기력도 한 몫, 연출도 한 몫, 한국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도 한 몫.

그리고 함께 보여지는 장면이 실제 윤동주 시인이 그 일을 겪을 때 이 시를 썼을 것 같은 장면인 것도.

어떻게 이런 연결성을 만들어냈을까?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눈에 어렸던 순수한 안광이 꺼져간다. 그의 청춘이 이렇게 져버린다는 것에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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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형사에게 심문을 받는 동주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고향 북간도 시절부터 감옥으로 오게 되는 과정까지 순차적인 사건들을 번갈아가며 보여주는데,

감옥에 있는 동주의 모습 위로 깔리는 부모님의 대화나 아래의 장면 등 흐름이 세련됐다.

막 현대적으로 세련됐다기보다는 빈티지하고 어떻게 보면 만화적인데

한국적인 면이 섞였고 그 흐름이 자연스러워서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고등형사의 나레이션이 깔리며 몽규가 이웅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즈음부터 요시찰 인물이 되었다는 고등형사의 모습, 그리고 몽규가 이웅의 무리들에게 총을 쏘는 장면만을 보여주고 바로 동주가 '말도 안돼!' 하면서 벌떡 일어나는 장면이 나온다. 동주에게 고등형사가 말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지만 몽규가 이웅을 죽였다는 말을 동주에게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연희전문대학교를 가게 되면서 강처중을 만나고 분위기가 밝아진다.
동주는 첫사랑을 만나고, 풋풋한 사랑에 떨려하고 즐거워하는 23살의 청춘들의 모습이 보여진다.
 

"야 처중아. 우리 이런 잡지 한 번 만들래?"
고향에서도 만들었던 잡지를 연전에 와서도 만들려는 몽규.
둘과 달리 바른 태도로 수업을 듣는 동주의 모습이 화면에 걸려 있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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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보는 몽규의 눈빛과 말투.

강의시간에 잡지책을 보다가 딱 떠올라서 이야기하는 장면.

서스럼없는 친구 사이, 가볍지 않게 하고 싶은 것에 홀린 마음이 눈빛과 말투에 담겨있다.

청춘물 느낌이 나는 코믹스러운 장면이기도 한데, 난 그 적절함을 찾는 배우들이 대단하다.

몽규의 물음에 "잡지?" 하는 처중의 무게감도 좋다.

극에서 이 장면은 짧은 장면이나, 이 장면이 어떤 흐름으로 이어지는지 알고 연기해야한다.

장면을 만들어내려는 욕심이 화면 너머로 느껴지지 않는 적절함이 좋다.

 

반대로 이여진 역의 연기는 난 잘 모르겠다.

일부러 그렇게 연기를 한 것 같기도 한데, 계속해서 흐름에 방해가 되었다. 단조로운 어투와 표정, 간질한 목소리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
동주는 수학문제를 풀라는 요구를 받는다.
소금물 주사를 놓으면서 지능이 떨어지는지 테스트를 하는 것인지.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런 동주가 감옥의 창살 너머 별을 바라본다.
별 헤는 밤.
너무나 서정적이다. 영화에 확 빨려들게 하는 장면.
 

창살을 넘어 과거로 돌아와 청춘을 보내는 셋의 모습이 보여진다.
뭐라 말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다.
동주의 청춘이 너무 밝게 빛난다. 그리고 동주의 청춘은 죽었다.
 

이렇게 한국적이고 예쁜 그림을 어떻게 찾아냈을까.
동주와 몽규의 첫 갈등.
화를 내는 동주에게 '그래. 내 알았다, 동주야.' 하는 어른스러운 몽규.
동주는 화낸 것이 부끄러워졌는지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젖는다.
여진이가 자신을 바래다 달라고 하자, 부끄러움에 동주는 '내가 왜.' 하고 무뚝뚝하게 답해버린다.
몽규가 바람을 쐴 겸 다녀오라며 쉬운 명분을 던져준다.
여리고 순수한 아이같은 동주를 몽규는 부드럽게 어르고 달래준다.
 
정지용 선생님을 만난 동주.
창씨 개명을 하면서까지 유학을 가는 것에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는 동주에게,
정지용 선생 또한 스스로를 고백한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자신이 부끄럽고, 이렇게 늘 술만 마시는 자신도, 유학가라고 권하는 자신도 부끄럽다.
그렇지만 부끄럽지 않게 사는게 얼마나 힘든 일이겠나.
 
"윤시인,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부끄러움을 모르는 놈들이 더 부끄러운거지."
 

두 인물의 대비되는 얼굴. 말간 동주와 찢어진 몽규.
바라는 마음은 같았으나 둘이 걷는 방식은 이리도 달랐다.
 
"넌 왜 나한테 같이 가자는 말은 안해?"
"동주야, 이제 어딜가든 나랑 같이 가자."
 

감옥에서 나온 후, 몽규는 동주에게 일본 대학을 가자고 한다.
몽규야, 뭔 다른 뜻이 있는건 아니지? 몽규는 다른 뜻이 있었다.
동주는 몽규와 다른 학우들의 이야기를 엿듣는다.
소금물 고문을 받는 감옥으로 돌아와, 동주는 몽규가 같은 감옥에 있음을 알게 된다.
아는 사람이 보여도 아는 척하지 말라고 경고해주는 또다른 한국인. 몽규도 동주를 본다.
 

한편, 다시 동주의 일본 유학시절로 돌아간다.
다카마쓰 교수와 쿠미는 동주의 출간에 힘을 실어준다.
조선어를 번역하는 위험한 일인데도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쿠미에게 친구(몽규)를 보는 것 같다고 하니,
 
"그 친구도 동주씨 시를 좋아하나보죠."
 
동주는 처음으로 기분 좋은 미소를 얼굴에 담는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있거라.
 
몽규가 같은 감옥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고등형사와 대립하는 동주.
아시아 해방을 위한 전쟁에서 개인의 희생이 당연한 일이라는 고등 형사.
 
"아시아 해방이란게 도대체 무슨 얘깁니까? 수십만 명이 희생되고 있는데 그게 무슨 해방입니까?"


서구사회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힌 일본의 찌질한 사상.
겨우 그것 때문에, 겨우 그 편협한 생각 때문에 이렇게 희생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가 찼을지.
분하고 억울했을지.
 

"조선인 유학생들 규합하자."
 
동주는 행동하기로 한다. 몽규가 하는 일에 본인도 껴달라며.
몽규는 머리가 깎인 동주의 모습을 보고 놀란다.
동주에게 계속 시를 쓰라는 몽규.
 
"왜? 너는 내가 시를 쓰는게 문학으로 도망치는거라면서 왜 자꾸 나를 도망치게 만드니."
 
동주는 규합하자고 말했지만 실행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몽규의 주도로 조선인 유학생 규합 모의를 꾸미게 되며, 동주는 동시에 시집 출간 준비를 한다.
고등형사는 동주에게 송몽규를 너가 부추겼지? 라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끝까지 껴주지 않았던 몽규.
동주의 마음이 얼마나 애타고 부끄러움에 몸서리 쳤을지.
 

 
모든 일을 송몽규에게 돌려도 이상하지 않지, 라고 고등형사는 말한다.
동주는 유학생 징집 모의를 제안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고등형사의 말은 동주의 마음을 파고든다.
 
규합이 틀어지고, 한밤중 몽규는 찾아와 당장 고향으로 가자고 한다. 동주는 더이상 몽규의 말에 순응하지 않기로 한다.
이번 만큼은 동주도 동주 나름으로 시대를 위한 일, 시 출간을 앞두고 있었고 몽규에게 끌려가지 않는 선택을 한다.
그 길로 몽규는 옥으로 잡혀가고, 동주 또한 쿠미와 만난 장소에서 잡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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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첩방은 남의 나라, 라고 읊는데 부들부들 음성이 떨린다. 감정 너무 좋아.

 

반역행위에 대한 서명을 하라는 고등형사.
전쟁에 질 것 같아서 하는 것 아니냐는 동주.
명분과 절차를 내세워 서구에 대한 열등감을 숨기는 것 아니냐는 몽규.
 
"왜 우리 죽음에 대한 명분이 필요한데?"
 
몽규는 그 서명 내용에 대한 반역 행위를 하지 못한 것에 한스러워, 괴로워서 서명을 한다.
 
동주는 부끄러워 서명하지 않는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 시를 쓰기를 바라고 시인이 되길 원했던 것이 너무 부끄럽고
앞장서지 못하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만 한 것이 부끄럽다며, 서명서를 찢어버린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바람은 어디로 가는 걸까, 라고 했던 동주.
순수하고 서정적인 여린 감성의 동주가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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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라고, 박정민의 연기를 감히 평가하냐만은 관객의 입장에서 봤을 때 과하다고 느껴졌다. 인상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나는 그랬다. 몽규를 넘어 이 장면을 살리고 싶다는 배우의 욕망이 느껴졌다고 해야하나. 하지만 둘의 성격과 걷는 방식이 달랐음이, 그리고 같았음이 보여지는 장면이라 너무 좋았다. 한스러워 서명하는 몽규와... 부끄러워 서명하지 않는 동주. 서명을 한다는 것은 결국 고등형사가 원하는 행위. 그 일을 행하지 않는 반항적인 동주. 절규하듯 소리치며 서명하는 몽규. 이게 도대체 뭘까. 뭔데 이런 비교가 재미있고 마음을 아리게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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