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펀치 드렁크 러브 (Punch·Drunk·Love) - 폴 토머스 앤더슨
이상한, 너무 너무 사랑스러운 영화


의문의 사람들이 길거리에 버려두고 간 물건.
조용하고 텅 비어있는 도로를 몇 초간 보여주면서 이 장면을 왜 보여주지? 하는 의문이 들 즈음,
빨간 SUV 하나가 요란하게 뒤집어지며 큰 소리를 내고
베리에게 갑자기 풍금이 찾아온다.
조용한 거리를 몇 초간 보여주다 곧이어 벌어지는 요란한 사고, 큰 이펙트, 놀라는 베리의 표정,
그리고 놓여지는 풍금. 사고는 전혀 조명되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부터 이 영화는 평범한 영화가 아님을 말해준다.
감독이 이 장면은 관객을 영화로 끌어들이는 장치였다고 말했다는데, 나 또한 이 장면을 보고 푹 빠져들었고
이 영화가 앞으로 어떤 독특한 색깔을 보여줄지 너무 기대됐다.
풍금을 두고 사랑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죄의식·진실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두 가지 해석 모두 좋지만
나는 사랑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베리에겐 7명의 누나들이 있다.
베리는 꾸역꾸역 누나들의 압박을 견뎌내지만 누나들에겐 베리가 감추고 싶어하는 진실들을 감출 수가 없다.
극한의 상황에 놓일 때마다 결국 흥분하고 물건을 부숴 버리고 만다.
베리는 의사인 형부에게 자신의 정신적인 문제를 진지하게 털어놓는다.
"베리, 난 치과의사야.. 내가 뭘 도와줄 수 있겠어?"
이런 장면에서 끅 소리를 내며 얼굴을 두 손에 푹 박아버리는 베리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사랑스럽지 않을 수가 있을까.
색깔, 그림자, 외부 소음, 푸딩... 다양한 상징적인 의미들을 영화에 녹여낸 것도 대단하지만
그와중에도 드라마, 코미디 요소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웠고
상징적인 의미들에 호기심을 갖는 정도에 그쳤더라도 이 영화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풍금이 갑자기 찾아온 날, 베리는 몰래 풍금을 훔쳐서 사무실에 가져다 놓는다.
이후 빨간 옷을 입은 레나가 나타난다.
그녀는 베리에게 관심이 있는 듯하고, 둘은 누나들에게 들키지 않은 채 만날 약속을 잡는다.
베리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레나를 상징하는 빨간색이 합쳐진 보라색의 옷을 입은 레나.
영화의 흐름도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주체자가 되는 인물은 베리이고
베리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랑은 레나다.
나는 이 영화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주가 되는 영화이기보단
베리의 정체성에 대한 성장 영화이고 그 성장을 사랑을 통해 보여주는 영화라고 봤다.
*등장인물이 같은 의상을 입고 나오는 것은 여러 거장 감독들에 대한 오마쥬라고 볼 수 있는데,
특히 빨간색과 파란색을 설정한 것은 장 뤽 고다르의 <여자는 여자다>에 대한 오마쥬로 보여진다고 한다.
*프랑소와 트뤼포의 <피아니스트를 쏴라> 장면들 또한 여러 번 오마쥬가 되었으며 레나라는 이름 또한 동일하다고 한다.
*펀치드렁크러브는 할리우드 뮤지컬과 프랑스의 뉴 웨이브 영화의 속성을 많이 가져왔다고 한다.
자크 타티의 <나의 아저씨>는 개체 및 주변 환경들을 이용해 만화적 표현을 사용하여
슬랩스틱, 풍자를 담아냈는데 이 점과 프레임의 사용, 소리 등에서 많은 오마쥬를 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온색 계열 줄무늬들은 제레미 블레이크의 작품들로 보여지는데,
색상의 사용과 존 브리온이 작곡한 음악, 소리의 사용을 보면 하나의 표현주의 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 : fountation 문화콘텐츠 발췌)

베리는 레나와 데이트를 하며 가까워진다.
놓쳐버린 키스를 하기위해 레나의 집을 찾아 뛰어다니는 베리.
"어떤 여자든 내 이름만 모르면 돼요. 난 잭이에요."
레나와 만나기 전, 고독을 느끼던 베리는 신문에서 폰 섹스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비밀을 지켜주는지 개인 정보가 유출되지 않는지 거듭 확인 받고는 개인 정보를 모두 알려주고 만다.
그로 인해 베리는 개인 정보를 빌미로 협박을 당하고 사무실, 집 시도때도 없이 전화가 온다.
그러던 중 업체의 괴한들에게 습격을 받아 돈을 빼앗기고 그들로부터 도망을 친다.
괴한들로부터 도망치는 베리의 모습은 누군가한테서 벗어나려고 한다기보단
자신의 두려움에 더 두려움을 느끼고 멀리 달아나는 것으로 보인다.
전화가 오지 않는 상황에도 베리는 전화의 환청을 듣는다.
도망치면 도망칠수록 두려움의 크기는 내 상상 속에서 점점 자라난다.
베리가 위기감이 들 때 띵땅똥땅하는 배경음이 깔리는데
코믹적인 느낌이 들면서도 빠른 박자로 마음을 졸이게 한다.
음악, 영상미도 뛰어나다.
*베리가 레나의 집을 찾아 뛰어다닐 때 나오는 음악은 'he needs me' 라는 노래인데,
서로를 원하며 서정적인 감성을 느끼게 해준 이 음악은
감독이 좋아하는 영화감독 로버트 알트만의 <뽀빠이>에 나왔던 노래라고 한다.
(* : fountation 문화콘텐츠 발췌)

베리는 레나를 만나기 위해 하와이로 갈 계획을 세우지만
이내 좌절하고, 또다시 벽을 향해 펀치를 날린다.
베리의 손엔 LOVE 로 보이는 상처가 나있다.
베리는 풍금을 쓰담으며 다시 마음을 안정시킨다.


누나와 전화하며 FUCKING을 남발하던 베리,
레나와 전화통화가 연결되자 퍼레이드가 등장하며 베리 주변의 소음은 커진다.
주변의 소음이나 사고는 베리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



"난 당신 얼굴을 한 대 치고 싶어요"
"...난 당신 얼굴을 씹어먹고 싶어요"
베리는 숨겨왔던 자신의 모습을 레나에게 고백한다.
서로의 진실한 모습을 공유하는 사랑을 하게 된 베리는 강해졌다.
더이상 도망치지 않고 자신을 괴롭히던 것들을 향해 펀치를 날린다.
폰 섹스 업체에도 직접 찾아가 자신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것들을 마주한다.
"나한텐 당신이 모르는 힘이 있어"
머리를 자르던 매트리스 맨에게 비장하게 다가가는 베리.
베리가 고독 속에서 찾았던 것은 전화였다.
두려움에 떨게 했던 것도 전화였고
키스를 할 수 있도록, 그녀와 만날 수 있도록 해줬던 사랑의 매개체 또한 전화였다.
타인과의 연결 속에서 베리는 스스로 사랑을 찾아냈다.
베리는 진실된 자신의 모습을 타인에게 내보였고 이해 받았고 성장했다.
따지고 보면 평범한 사람이 세상에 어디있을까. 다 베리같은 괴짜들이다.
주변으로 인해 자신의 본 모습을 인정받지 못했던 베리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리고 더이상 감추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스스로를 내보이는 용기를 가졌을 때 성장했다.

보는 내내 나를 설레게 했던 영화
음악도, 영상미도, 베리의 사랑스러움도, 현실 웃음 짓게 되는 코믹도,
흥미롭게 만드는 영화적 장치들도 다음 장면을 계속 기대하게 했다.
소음과 폭력, 사고와 욕설이 나오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럽게 그려낼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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