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번 선생님의 추천 책 1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공간은 건축이 제공하는 물리적인 환경과 관계와 행위에 의한 비물리적 환경이 결합되어 만들어진다. 건축을 하나의 살아있는 체험으로 보지 않으면 공간 경험을 디자인으로 연결하기 어렵다.
길이나 복도는 우리를 걷게 만들지만, 홀과 같이 모이는 공간은 우리를 멈추게 한다. '빨아들인다.' 그런 공간에는 움직임보다 머무름이 있다.
건축의 공간에서 머무름과 움직임을 만드는 일은 머무름의 '장소'와 움직임의 '축'을 만드는 일이다.
"학교로 가는 긴 길을 걷고 있었다. (중략) 그런데 문득, 자욱한 안개 속에서 내가 드러나는 매우 극적인 체험을 했다. 모든 것은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났다. 나는 나 자신이 되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라는 사람은 존재했었다. 하지만 (안개 속에서) 모든 것은 변해버렸고, 나는 나 자신이 된 것이다."
건축을 이미지나 형태로 생각하면 온전한 경험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들은 어디까지나 빈약한 외광이, 황혼색의 벽면에 매달려서 겨우 여생을 지키고 있는, 저 섬세한 밝음을 즐긴다.
특정한 행위나 기능 없이 빛 공간의 강렬한 체험,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도시와 건축의 공간은 실제의 경험을 중심으로 구성해야 한다. 컴퓨터와 머리만으로 설계한 최신의 디자인은 그 형태는 특이할지 모르나 향기와 감촉이 없다. 건축은 몸의 경험을 바탕으로 설계해야 한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작품 <체리향기>
영화 내내 '체리'는 나오지 않는다. 황량한 들판만 계속 나온다.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주인공은 자신의 종말을 도와줄 사람을 찾는데 그러다 길에서 한 노인을 만난다.
"생각해봐요. 새벽에 막 떠오르는 해를 보는 기쁨, 맑은 샘물에 얼굴을 씻는 상큼함, 보름달이 뜬 밤하늘의 아름다움, 그리고 혀끝에 감도는 달콤한 체리 향기......"
손의 본질은 단지 무언가를 만진다는 것만으로는 정확하게 정의되고 설명될 수 없다. (중략) 모든 행위 속의 모든 손의 움직임은 사고하는 과정을 거친다. 우리의 손이 가지는 (촉감은) 사고의 요소를 함께 가진다. _하이데거
경험은 표피적인 감각의 자극과 다르다. 눈, 코, 귀, 입, 피부를 통해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는 그저 단순한 자극에 불과하다. 감각의 정보들이 우리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 기억의 심연, 영혼의 바다를 만날 때 비로소 '깊이 있는 경험'이 된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모여 한 사람의 존재를 이룬다.
건축은 시각디자인이나 제품디자인과 결이 다른 것 같다. 디자인이 예술과 경계가 모호한 영역이 분명 있지만 결국 나는 상업적인 것이라 생각하는데 건축과 인테리어는 예술로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더 큰 것 같다. 공간 브랜딩을 하려면 두 가지를 모두 갖추어야 감도가 높으면서도 클라이언트의 비지니스가 성공할 수 있는 전략을 짤 수 있을 것 같은데 공간스튜디오에 가서 전략적인 부분을 배울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사실 나는 그 부분을 키우고 싶다. 실무자로 성장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디렉터가 되고 싶은 것이어서.. 그치만 이렇게 예술 작품이나 건축물을 통해 어떤 감각들이 자극되는지, 어떤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읽다보니 이러한 감각을 키우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예전에는 자연을 즐긴다거나, 공간감을 느낀다거나, 이렇게 글을 쓴다거나, 내 방식대로의 그림을 그린다거나 하는, 내 감성으로 하던 것들이 있었는데 그걸 몇 년 간 놓았었다. 내 감각으로, 공간을 만들면 어떤 공간이 나올지도 궁금해진다. 이 책을 통해 공간을 조금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냄새, 개인적인 기억, 소리, 빛, 촉감 등을 통해 느껴지는 많은 부분들을 생각해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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